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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신을 고발한 영화'칸'에서 기립박수 쏟아진 이유..

등록일 2019년03월0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소년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 이유


'가버나움'이 소개됐다.

2일 방송된 KBS '영화가 좋다'의 '도도한 영화' 코너에서는 '가버나움'을 소개했다.

이 작품은 부모의 학대 속에 살아온 10대 소년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고 비로소 세상의 응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특히 실제 난민 출신 배우들이 빈곤과 난민, 아동 인권 문제 등을 고발해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20일엔 30여 개국 주한 대사들이 모여 이 영화를 관람하는 특별 상영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에게 15분간의 기립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 1월 24일 개봉한 영화 ‘가버나움’은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어쩌면 레바논 12살 소년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고 온 세상의 관심과 응원을 받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가버나움’이 특별한 이유는 주인공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부터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요나스 역의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까지 '가버나움'의 주요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연기경력이 전무한 비 전문 배우들이다.

특히 영화 속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비전문 배우들의 연기는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거나 흉내 내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표현했고, 진정성 있는 연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다.

또한 '가버나움' 제작진은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는데, 현재도 이 '가버나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소년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 이유   

극 중 열두 살 어린 소년인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부모를 고소한다. 죄목은 '나를 태어나게 한 죄'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부모를 고소하느냐고 묻는다면, 자인의 부모가 했던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보고 이야기 해보세요."

대대로 내려오는 귀중한 유산이 가난뿐이었던 그들은, 그 비참한 되물림을 끊는 건 관심도 없는지 대책 없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기왕에 생명이 탄생했으면, 잘 돌보기라도 해야지. 급기야 사랑하는 딸 사하르가 막 초경을 했을 무렵, 그들은 돈을 받는 대가로 이 아이를 성인 남자에게 시집보낸다. 이에 자인은,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일어서 집을 나선다.



배려 있는 영화는 인물들을 찍는 카메라의 시선조차 세심하다. 영화 속 카메라는 내내 무릎을 구부린 듯한 높이에서 촬영하는데, 그건 어린 자인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인 것 같다. 어른의 시선으로 자인을 '내려다' 보지 않고, 자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를 응시하거나, 때론 자인을 '올려다' 보기까지 한다. 사람에 대한 배려는 사소한 디테일마저 신경 쓰는 세심함과 동의어일 것이다. 자인만이 아니다. 기실 카메라는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가에서 그들을 응시한다.
그 응시의 대상은 하나같이 소외되거나, 소외되는 중이거나, 소외될 사람이다. 삶의 벼랑으로 천천히 내몰리는 사람들. 굶주린 사람, 미혼모, 난민, 불법체류자, 무국적자인 갓난아기와 가족이 없는 노인. 더욱 우리를 목메게 하는 건, 이들이 자기보다 더 약한 자를 따뜻하게 보듬는 순간이다. 그녀가 당국에 잡혔으므로, 한순간에 엄마를 잃은 요나스에게 자인은 새로운 보호자가 되거나, 영주권을 얻기 위해 취업했음을 증명해야 했던 라힐에게 가족이 없는 노인이 '보호자' 역할을 했던 것(비록 한순간이었지만)은 두고두고 뭉클한 장면이다. 휘청이는 개인을 붙잡는 건, 늘 함께의 힘이다.


자인의 버스 옆자리에 앉은 '바퀴 맨' 할아버지는 마치, 그들 모두를 향한 나딘 라바키 감독의 응원처럼 보인다. 스파이더맨 심볼에 바퀴벌레로 바꿔 넣은 수트를 입은 할아버지는 '바퀴 맨'인데, 이건 이 자체로 '바퀴벌레'의 상징처럼 보인다. (영화는 이후에도 짧게 나온 쇼트를 통해 벽을 기어 다니거나 땅을 기는 바퀴벌레를 포착한다) 불법체류자인 라힐은 삶이 위태롭다고 느낄 때마다 '바퀴 맨' 할아버지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곳이 참 더럽고 부박하고 비참하고 처절해도, 저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가라.

<가버나움>은 신을 고발하는 영화다

   

자인은 부모를 고발하지만, 이 영화는 그의 부모를 고발하지 않는다. 영화가 비추는 건 그 너머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저 초월적인 그분을. (영화 초반, 카메라는 부감 쇼트로 위에서 아래로 이 도시를 내려다보는데 이건 초월자의 시점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영화는 신을 고발한다. 종교는 천지 만물에 사랑과 자비로 범재하는 신을 '느끼는데'(불법체류자 난민을 가둔 유치장에서 가톨릭은 찬양하고, 무슬림은 기도한다), 인간의 불행을 방관하는 신과 '싸우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천국은 신이 있는 곳이므로, 신이 이곳에 있다면 이곳도 천국이다'라는 그들에게, 오직 자인만 '이곳은 지옥'이라고 말한다.


 

영화에는 종종 자인의 뒷모습이 나온다. 영화의 문법에서 뒷모습은 도망침과 초라함, 또는 처절함의 상징으로 쓰이곤 했다. 자인의 뒷모습 역시 얼마든지 애처롭게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보고 싶지 않다. 그의 등은 지금 무엇으로부터 피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마주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삶과, 부모와, 신 앞에서 당당히 마주 서 있는 거라고.

 

타임포스트 www.time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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