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포스트=이재관기자]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 시작 푸틴 발표 후 2개월
통제 불가 러 전술핵 … 공식 군축 협정 없어 미국에 우위 분석
푸틴, 美 ‘핵 군축조약’, 中 '해외 핵 배치 반대' 모두 뒤집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3개국과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 지역에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의 배치가 시작했다.
이는 1996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중 러시아 핵무기가 해외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에 유럽의 핵전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유럽 내 핵전력에 비해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는 국제적 통제 범위 밖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앞선다는 분석이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비난에도 이번 조처를 밀어붙일 태세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위축하기 위함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밝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pxhere.com 제공
◇ 벨라루스 … 대통령 핵무기 저장고 완공 목표 7월 1일까지 완료 예정
26일(현지시각) 관련 외신은 전날 러시아 방송과 인터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오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이전 배치에 관한 법령에 서명했다고 나에게 알려왔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그는 핵무기 이전을 언급하며 "핵무기를 옮기는 노력이 시작됐다. 저장 시설 등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빅토르 흐레닌 벨라루스 국방장관이 핵무기 이전에 관한 문서에 정식 서명한 것이 알려졌다.
지난 3월 25일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한 공개하였다. 이는 이로부터 약 2개월 만이다.
1991년 옛 소비에트연방(구소련) 해체 이후 해외 핵무기의 국내 이전은 1996년 완료되었다. 이후 27년 만에 러시아가 해외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벨라루스는 지난달 러시아에 군부대를 파견해 전술 핵무기 운용 훈련을 받고 복귀했고, 이미 핵무기 운반체계인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폭격기가 벨라루스에 배치돼 있다. 이러한 단계적인 절차를 따라 전술 핵무기 저장고를 7월 1일까지 완공할 예정으로 발표하였다.
벨라루스 발표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1달여 뒤면 벨라루스는 핵무기를 발사될 수 있게 되는 것이기에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제적인 핵무기 이동 상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 "러, 미국보다 상당한 우위 핵무기 전력 보유"
이번 발표에 따라 배치될 핵무기의 종류와 규모가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미국의 유럽 내 전술 핵전력이 러시아에 비해 이 열세라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항공 투발용 폭탄과 단거리 미사일 탄두, 포탄을 포함해 약 2천기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 핵무기 약 100개에 비해 상당한 양이다.
얼마 전 AP 통신은 벨라루스 군사 전문가 알리악산드르 알레신과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벨라루스에는 냉전 시기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무기고의 약 3분의 2가 있었으며, 현재 이들 중 10여개의 시설이 사용 가능한 것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분쟁연구센터 러시아 핵무기 전문가 벨라리 아키멘코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수적으로 상당하고 다양한 종류의 무기고를 보유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이론적으로 미국에 비해 전술 핵무기 범주에서 상당한 우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략 핵무기와 달리 전술 핵무기는 공식적인 군축 협정이 존재하지 않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전략 핵무기는 대도시 파괴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하여 군축 협정의 제재를 받지만,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력이 작은 전술 핵무기는 중요 인프라를 파괴하거나 전장에서 사용하므로 협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아키멘코는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핵무기는 거의 알려진 게 없고 국제 통제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과학자연합의 한스 크리스텐슨 또한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는 검증된 합의로 규제된 적이 없는 탓에 가장 모호하고 불투명한 팩트 중 하나"라며 상황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러시아는 동맹인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 배치와 동시에 미국에 핵무기 관련 모든 정보 제공을 중단을 선언하며 자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각)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에 따라 이뤄지던 러시아와 미국 간의 모든 정보 이전이 중단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약화가 목적
서방이 현대식 전차와 장거리 미사일에 이어 F-16 전투기까지 지원을 검토하는 도중 이번 조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핵 위협을 통해 서방의 지원을 약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여러 수도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짚었다.
국경을 접한 국가는 이미 러시아가 장거리 핵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가로 벨라루스로 핵무기를 전진 배치하는 것은 별개로 핵 위협에 의한 심리적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알레신 벨라루스 군가 전문가는 "이번 핵무기 배치는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선언하고 서방이 무기를 지원하는 와중에 이뤄졌다"는 점을 언급하며 "벨라루스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전역, 발트해 연안 국가 및 독일 일부까지 닿을 수 있는 만큼 서방의 지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 홈페이지 캡쳐
◇ 미 “무책임한 행동 강력 규탄", 러 "벨라루스와 군사협력 강화 전략핵도 고려"
미국은 러시아의 이번 조치에 관해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화학이나 핵무기를 사용하면 심각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같은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미 국무부의 이번 브리핑을 비난하며 이는 벨라루스에 대한 내정 간섭 시도라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와 벨라루스 양국 모두 매우 적대적 환경에 처해 있다"며 "이에 따라 양국이 군사협력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동맹 관계를 심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핵무기 지원'이라는 가정하에 러시아의 핵무기 선제 사용을 언급해 긴장을 고조했다.
지난 2월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의 핵 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이는 전략 핵무기에 대한 통제 체제를 흔드는 행위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해외 핵무기 배치에 반대하고 이미 배치한 핵무기도 철수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힌 적 있다.
현재의 러시아의 해외 전술핵 배치는 시진핑 중국과의 합의도 파기한 조치이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